우리가 살고있는 땅이 위대한 건 역사를 품고 있기때문이다. 이 땅위에서 누군가는 나라를 세웠고 누군가는 사랑을 했고 누군가는 외롭 게 죽어갔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운 옛사람을 찾아서 ^(성하출판 펴냄)는 땅과 유적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흔적을 복원해내는 책이다. 여행작가인 저자 강희일씨는 “흘러 간 역사는 옛날이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발밑에서 숨쉬고 있다”고 말 한다. 강원도 철원은 궁예의 역사가 묻어있는 땅이다. 의정부에서 철원으로 가 다보면 고석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고석정 근처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돌들이 유독 많다. 후고구려의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면서 궁예는 이 돌 들을 보고 불길한 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궁예는 이 불길한 예감을 무시한 채 도읍을 정했고 예감이 맞았 는지 바로 그 철원평야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지금은 분단으로 인해 철도의 종단점이 있는 근처에서 궁예는 파란많은 삶을 마감했다. 기록에는 왕건에게 .기던 궁예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밭에 들어가 보리이삭을 훔쳐먹다 농민들에게 들켜 살해당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철원평야에서 사는 사람들은 운이다했음을 안 궁예가 철원평야 에 우뚝서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믿는다. 오랜세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어느쪽의 이야기가 맞든 그 모든 사실을 지켜본 철원평야는 지금도 묵묵히 인간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있다. 철원 평야 인근은 늘 사연이 많은 곳이었다. 의적 임꺽정이 몸을 숨긴 곳이었고 한국동란 최고의 격전지였으며 지금은 분단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는 땅이다. 이곳을 흐르는 강이 한탄강이다. 원래는 큰 강이라는 뜻의 ‘한여울’이 었으나 왕건에게 .기던 궁예가 눈물을 쏟았던 강이라고 해서 한탄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산도 궁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해서 ‘울음 명(鳴)’자를 쓴 명성산이다. 어느새 잊혀졌지만 철원평야 어디를 가도 아득한 궁예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곳 없어 냇가에 앉았 으니/저 물도 내 마음 같아 울며 밤길을 가는 구나.” 조선초기 의금부도사였던 왕방연은 단종을 유배지인 영월에 보내는 임무 를 수행하기 위해 왔다가 지금의 서강(西江)에 걸터앉아 이 시조를 지었다. 강원도 영월은 유난히 단종의 아픔이 많이남아있는 땅이다. 3면이 강물로 둘러쌓이고 풍수(風水)학상 음기(陰氣)의 땅인 이 곳은 육 지속의 절해고도 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유배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청령포에 유배되어 있던 단종은 그해 여름 큰 홍수가 나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다. 관풍헌은 지금의 영월시내 한 복판이다. 관풍헌의 오른 쪽에는 ‘자규루(子規樓)’라는 누각이 있다. 원래 누각의 이름은 ‘매 죽루’였으나 단종이 이 누각에 올라 자신의 처지를 소쩍새에 비유한 ‘ 자규시’을 읊으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원통한 새가 되어 제궁에서 나오니/짝 잃은 그림과 꿈은 산중이로구나/ 자규새 소리 멎고 조각달이 맑은데/피눈물 흐르고 꽃송이 떨어져 붉었구 나/하늘도 귀가 먹어 애소를 못 듣는데/어찌하여 수심 많은 내 귀에만 들리는가.” 단종이 죽자 누구도 시신을 수습하려고 하지 않자 엄홍도라는 사람이 단 종의 시신을 가매장했다. 밤길을 틈타 시신을 옮기던 그는 눈쌓인 길 중 간쯤에 노루가 앉았다 간 자리에 시신을 묻었다. 그 자리에만 눈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단종의 무덤이 그나마 제대로된 형태를 갖추게 된건 그로부터 200여년이지나서였다. 전라북도의 작은 도시인 익산은 백제 무왕의 숨결이 남아있 는 곳이다. 무왕은 ‘서동요’의 주인공이다. 그는 신라의 선화공주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 장장 600리가 넘는길을 달려가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고 결 국 선화공주를 왕비로 맞이한다. 무왕은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이기 이 전에 엄청난 꿈을 가진 통치자였다. 그의 꿈이 바로 익산땅에 남아있다. 무왕은 백제를 다시 일으키고 싶어 했다. 그는 도성을 익산으로 옮기고자했다. 왕평궁성을 익산에 세웠으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석사와 미륵사를 창건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의자왕때 백제는 멸망의 길을 걸었고 무왕의 꿈은 몇 개의 주춧돌과 석탑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비운의 길을 걸었던 역사인 물의 흔적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역사기행서다.
